반응형 인천교구천주교성지1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 성지 (+미사 시간 안내) 인천 제물진두 천주교 성지의 역사, 순례 후기 인천 제물진두 순교 성지는 병인박해 때 프랑스와의 병인양요, 미국과의 신미양요 등을 치른 후, 외적과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여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려는 의도에서 대원군 정권이 서울 한강변의 양화진두(지금의 절두산 성지)와 함께 천주교인들에 대한 공개 처형장으로 고른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868년 4월 15일에는 부평 읍내에 살던 손 베드로 넓적이(박순집의 이모부), 김씨(손 베드로의 부인, 박순집의 이모), 백치문 사도요한(손 베드로의 사위)은 포졸에게 잡혀 서울 포도청에서 고문과 신문을 받고 인천 제물포로 압송되어 제물진두에서 4월 20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신미양요가 있었던 1871년에는 남양에 살.. 2024. 9. 8.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