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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남자 세례명 추천) 성 안토니오 (축일 ; 6월 13일)

by 미남의 전설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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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성인 (St. Antonius) (1195 ~ 1231) (축일 ; 6월 13일)

 

안토니오 성인 (St. Antonius) (1195 ~ 1231) (축일 ; 6월 13일)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 기사 아들로 태어나 페르난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신앙심이 돈독한 부모 아래에서 자라 성당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열다섯 살에 리스본에 있는 플로라의 성 빈첸시오회의 수도원 학교로 전학을 가고 2년 뒤에는 다시 코임브레의 성 십자가라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도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공부와 기도생활에만 전념했으며,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안토니오 성인은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선교사가 모로코에서 순교한 것을 보고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옮겨 안토니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모로코에 도착하자마자 병에 걸려 되돌아오게 됐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고국으로 돌아와 뛰어난 설교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어느 날 코임브라 관구장인 그란치아노 신부와 함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루마니아 포를리로 갔다가 강론할 사람이 마땅히 없어서 안토니오 성인이 강론을 하게 됐습니다.

뜻밖에도 안토니오 성인은 신앙적 열정이 가득한 강론으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안토니오 성인은 이단이 성행하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남부 프랑스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고 볼로냐 등에서 설교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많은 이단자를 회개시켰고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는 채무자들을 돕고,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이 파도바 지역에서 주로 활동해서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수종을 비롯한 열병으로 기력이 쇠해 요양하기 위해 캄포 산 피에로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되돌아오는 길에 베로나의 아르첼라에 있는 성클라라 수도회에서 서른 여섯 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의 유해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보통 선종 후 50년이 지나야 시작되는 시성절차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어 안토니오 성인은 선종하고 바로 다음 해에 그레고리우스 9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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