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이윤일 요한은 충청도 홍주에서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부친 대(代)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이 언제부터 경상도 문경군 새재 여우목으로 와서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박해가 일어났을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는데, 키가 크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므로 위엄이 있었으며, 신심이 깊고 또 솔직담백하여 주변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친가와 외가 모두 선대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가문이어서 선친들 중에서는 전교회장과 순교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윤일 요한도 이러한 가풍을 이어받아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기 본분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1866년 병인년 11월 18일 (음력 10월 12일), 문경 관아에서는 여우목에 천주교인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인지하고 포졸들을 보냈습니다.
이윤일 요한은 포졸들이 자기를 잡으러 오는 것을 알면서도 이미 각오하였기에 오히려 도망치지 않고 태연히 그들을 맞아들였습니다.
포졸들이 "이 마을을 대표하는 집 주인이 누구며 천주교를 믿는 자가 누구냐?"고 묻자, 이윤일 요한은 선뜻 나서며 “바로 나요”하며 점잖게 말하였습니다.
포졸들은 마을을 수색하여 이윤일 요한의 가족 8명과 마을의 신자 30명을 체포하여 험준한 산길을 걸어 문경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문경에서 사흘을 지낸 후 상주로 압송되었습니다. 여기서 세 달을 지냈는데 그가 기거하던 곳은 집이 아니었고, 마구간도 돼지우리도 아닌 겨울에 무나 배추를 저장하기 위해 파 둔 구덩이이었습니다.
그의 목에는 죄수가 쓰는 칼이 두 개나 채워 졌고, 발에는 차꼬를 끼워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윤일 요한은 이에 굽히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기도와 묵상을 하였으며 신자들을 격려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 후 상주 목사는 마지막 문초를 마치고 70여 명의 신자를 세 편으로 갈랐습니다.
첫째 편은 집으로 돌려보낼 자들이고, 둘째 편은 처형될 사람들 그리고 셋째 편은 이윤일 요한과 같은 사교(물론 조선 조정의 입장에서)의 두목이었습니다.
상주 목사는 1867년 1월 4일 대원군의 윤허와 함께 군중에게 교훈이 되게 사형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집행을 위해 대구로 압송하였습니다.
이윤일 요한은 사형 선고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출발하기 전에 자녀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제 순교하러 떠난다. 너희들은 집에 돌아가 성실하게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여라. 그리고 꼭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말하였습니다.

1867년 1월 21일 (음력 1866년 12월 16일) 이윤일 요한은 포졸들이 주는 마지막 음식을 다 받아먹고 남문 밖 관덕정(지금의 대구 관덕정 순교기념관 자리)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천주학장이를 참수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 형장은 인파로 가득찼습니다.
집행관이 나와서 선고문을 낭독하자 요한은 품속에서 돈 주머니를 꺼내어 희광이에게 주며 “나를 위해 수고하는 자네에게 줄 터이니 받아서 요긴 하게 쓰게나. 그 대신 부디 한 칼에 내 목을 베어 주게나.”하고 말하였습니다.
이윤일 요한은 경건하게 십자성호를 긋고 조용히 꿇어앉았습니다. 돈을 준 효력이 있었는지 이윤일 요한의 목은 한 칼에 떨어졌습니다.
순교 후 그의 유해는 이 토마스와 그의 아들 이의서 마티아에 의해 대구 날뫼(현재 대구 비산동성당 근처)에 매장되었다가, 1901년 경부선 철도가 착공되면서 당시 용인의 먹뱅이에 살고 있던 그의 동생 이시영에 의해 1912년 이동면 묵리 산으로 이장하였습니다.
1976년 6월 24일 다시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이장되었다가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임이 밝혀져 1987년 1월 21일 대구 성모당에 안치되었고, 그날 대구대교구의 제2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1월 20일 관덕정 순교기념관 성당 제대에 모시고 봉안식을 가졌습니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성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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