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포 지역의 유래와 천주교 복음 전파의 역사
내포는 신리성지를 중심으로 한 주변의 평야지대를 일컫습니다.
원래 내포(內浦)라는 지명은 '안쪽에 자리 잡은 갯가'를 뜻하는 우리말 '안 개'를 한자식으로 표현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바다가 육지 안으로 깊숙이 휘어져서 들어간 지역을 뜻하는 말로 처음에는 바닷물이 수로를 타고 내륙으로 들어와 육지와 만나는 지역을 가리켰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서북쪽 일대 지역을 부르는 지명으로 이는 오늘날의 당진, 서산, 아산, 홍성, 청양 지역에 해당하며 넓게는 보령지역도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천주교 역사 속에서 '내포'는 보다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초창기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삽교천과 무한천에 접한 평야지역을 '내포 평야'라고 불렀습니다.
충남 당진시 신평면, 우강면, 합덕읍, 예산군 고덕면, 신암면, 예산읍 일대가 여기에 속합니다.
내포지방은 지도를 놓고 보면 삽교천과 무한천 두 물줄기가 평야와 어우러져 자궁(子宮)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양 그대로 이 지역은 조선시대에 수용된 천주교 신앙의 모태로서 '신앙의 못자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내포 천주교회의 역사는 1784년 여사울(예산군 신암면) 출신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세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포 주민들은 기꺼이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내포지역의 천주교는 어느 곳보다 빠르고 넓게 퍼져나갔으며 깊은 신앙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내포지역에 천주교가 왕성하게 전파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개방된 종교적 심성을 들 수 있습니다.
유학을 기반으로 나라를 성립한 조선은 기존에 백성들의 정신을 지배하던 불교를 억압했고, 이에 따라 조선 후기에는 주류를 이루는 종교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민중들의 종교적 심성은 없어지지 않았고 이 시기에 뚜렷한 신앙 체계를 가진 천주교가 소개되면서 종교적 심성이 승화하여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둘째, 내포 주민들의 동질성이 천주교 수용과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포구와 간척지대, 월경지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 살아온 내포 사람들은 신분적·제도적으로 여러 가지 차별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천주교 가르침 안에 포함된 '평등과 나눔'의 정신에 매료되었고, 종교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셋째, 내포지역 인근에는 중국을 통해 들어온 천주학에 대한 책을 전하고 해석해 줄 실학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성호 이익(李瀷, 1681- 1763)을 따르는 성호학파 사람들에 의해 먼저 수용되었습니다.
성호의 학풍을 따르는 학자들이 내포의 중심인 고덕 지방(예산군 고덕면)에 포진하고 있었는데, 이들에 의해 새로운 가르침인 천주교가 일찍부터 내포에 소개되었습니다.
1784년 이존창이 세례를 받기 전부터 이미 천주교는 내포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존창의 세례와 복음 선포를 계기로 불꽃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신리성지의 지리적 위치, 신앙의 역사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한 신리는 삽교천 상류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지금은 평야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밀물 때 배가 드나들었던 곳입니다.
신리의 인접마을인 거더리에는 나루가 있어 배로 외부와 왕래하기가 수월했습니다.
1860년대의 기록에 의하면 신리 일대는 온통 습지였으며, 우물이 없어 주변에 흐르는 소금기 섞인 물을 마셨다고 전해집니다.
고덕지역은 신리 앞을 지나는 삽교천의 상류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인데 별암, 높은뫼, 한내 등 초기 교회 신자들이 거주하던 마을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더 상류로 올라가면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가 있는 덕산이 있습니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세례를 받은 1784년 이후 신리에 천주교가 전해지게 됩니다.
이 시기 신리에 정착해 살고 있던 밀양 손씨 집안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1866년 무렵에는 마을 사람 400여 명 전체가 신자로 이루어진 교우촌으로 성장합니다.
신리는 바닷길을 통해 외부와 접촉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내포의 교우촌들과 쉽게 연결된다는 이점이 있었기에 조선 천주교회의 중요한 거점 지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865년부터 신리에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주했으며, 프랑스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입국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습니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신리의 첫 순교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손경서 안드레아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공주에서 순교한 이후 서울, 수원, 홍주, 해미, 보령 갈매못 등에서 40명이 순교의 길을 떠났습니다.
이는 이름이 밝혀진 내포지역 순교자들 중 10%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신리의 신자 가운데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무명 순교자들도 많았는데, 인근 대전리 공동묘지에 위치한 46기의 무명 순교자 묘지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병인박해는 흥선 대원군의 명령으로 1866년 시작되어, 그가 실각하는 1873년까지 계속된 박해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서양 세력이 확장해오자 위기의식을 느꼈고,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천주교를 박해하게 됩니다.
신리에는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고 있었기에 관련 인물들이 먼저 체포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이웃 교우촌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 오메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가 자수하면서 다블뤼 주교와 함께 순교의 길을 떠납니다.
이때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집 주인 손자선 토마스와 사목활동을 돕던 황석두 루카도 체포됩니다.
이들 중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는 1866년 3월 30일 보령 갈매못(아래 링크 참고하시면 됩니다.)에서 순교하였고, 다음 날 손자선 회장은 공주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대전교구 충청남도 보령시 갈매못 순교 성지 성당 순례,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후기 (+미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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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 순교지로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보령 갈매못 순교 성지 순례 후기 202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보령 갈매못 순교 성지에서 봉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저는 한국 천주교 성
sacred-andrea.com
같은 해 4명의 신자가, 이듬해 6명이 순교록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1868년 더 큰 박해가 일어나면서 신리의 신자 19명이 순교하게 됩니다.
정치적 상황이나 특정한 사건에 연루되어 천주 교인을 핍박하는 박해가 일어났지만 신리의 신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앙에 따라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신리를 떠나 뿔뿔이 흩어진 신자들은 순교자들에 관해 증언할 형편이 못될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박해로 신리 교우촌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단 한 명의 신자도 살지 않는 비신자 마을로 변하게 됩니다.
공소로 재탄생한 신리
병인박해 이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신리에는 오랫동안 신자들이 터를 잡지 못했습니다.
오랜 박해를 기억하는 주민들이 천주교 신자들의 유입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내포 교회의 중심이었고, 수많은 순교자들의 땅인 신리는 신자들 사이에서 신앙을 회복해야만 하는 소중한 장소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1892년 프랑스 선교사 퀴를리에 신부는 신리에서 서쪽으로 2km 떨어진 양촌(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성당을 세웠습니다.
이 양촌성당은 나중에 합덕읍으로 이전하여 합덕성당으로 이름이 바뀌고 양촌성당이 있던 자리는 양촌공소가 되었습니다.
1923년에는 거더리에 공소가 설립되었습니다.
1927년 신리의 신자들은 다블뤼 주교가 지냈던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집을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하게 됩니다.

복원된 생가(주교관)의 기둥과 뼈대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 위 사진입니다.)
대들보에는 '가경21년' 곧, 1816년에 상량하였다는 것을 표시하였고, 1954년과 1964년에 축성과 수리를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4년 복원 작업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리성지 순례 후기
저는 지난 2025년 11월 30일 제 영명축일인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신리성지로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신리성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들도 많이 방문하시는 아름답고 역사가 깊은 곳입니다.

위 사진은 당진 신리성지 순교미술관 건물입니다.
처음엔 성당 건물인 줄 알았습니다.
매우 독특합니다. 김원 안드레아 건축가님의 설계작품입니다.
1층에는 내포지역과 천주교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되어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다블뤼 주교의 조선에서 사목활동에 대해서 그림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천주교 대전교구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은 일랑 이종상 화백께서 순수한 믿음에서 재능 기부를 통하여 3년에의 작업을 거쳐 교회에 봉헌한 신리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13점의 순교 기록화를 전시하고 있는 우리 나라 유일의 순교미술관입니다.

다블뤼 주교 그림입니다.
이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은 상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왼손에 모자를 쥐고 있듯이 모자까지 써야만 신분의 노출을 피할 수 있었지요.
상복은 ‘먼 길을 다니는 사람’의 복장으로, 조선에서 상복을 입은 자는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아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인식이 있었기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프랑스인 외국인으로서의 눈길을 덜 끌 수 있었습니다.

위 그림은 충청도 강경 포구를 통하여 입국한 선교사들입니다.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 다블뤼 주교, 김대건 신부가 탄 라파엘호는 상해에서 출발하여 제주 용수리에 표착한 뒤, 10월 12일에 강경 포구를 통하여 조선에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제일 위로 올라가면 하늘전망대로 가는 문이 나옵니다.
순교미술관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를 가까이서 보면 위 사진과 같은 느낌입니다.
매우 인상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성지 중간중간에 다섯 분의 성인들의 작은 경당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위 사진은 다블뤼 주교를 기억하는 경당입니다.
성 다블뤼 주교의 좌우명인 "예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라는 문구가 보이네요.

신리성지는 산책길이 워낙 잘 조성되어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십자가의 길을 드리면서 차분하게 산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당 내부는 아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순교자 성월 기도를 들렸습니다.

위 그림은 신리성지 성당 안에 있습니다.
제단 맞은편 입구 안 위의 벽에 걸려있습니다.
자신들의 목숨보다 하느님을 더 수중히 여겼던 신리의 다섯 성인과 많은 신자들이 순교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모습입니다.
다음에 신리성지에 순례를 오면 미사도 드리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버그내순례길을 걷고 싶네요.
충청남도 당진시 신리성지 기본정보, 미사 시간
(2026년 8월 27일 기준)
주소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평애6로 135
사무실 전화번호 ; 041-363-1359
담당 사제 ; 신인수 안드레아 신부님
대전교구 당진 신리성지 미사 시간
화요일 ~ 주일 ; 11:00
월요일 ; 미사 없음

위 사진은 신리성지 순례확인도장 사진입니다.
추가 설명을 드리자면 아래에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Qui a Jésus a tout)"라는 내용이 적힌 도장이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 정식 순례확인 도장입니다. 2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성지 성당 입구에서 찍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Qui a Jésus a tout)"는 103위 순교 성인 중 한 분이신 다블뤼 주교의 좌우명이기도 했지요.
위에 있는 도장은 천주교 대전교구의 "버그내 순례길" 도장입니다.
버그네 순례길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충청남도 솔뫼성지 ~ 합덕성당 ~ 합덕제중수비 ~ 원시장,원시보 우물터 ~ 신리무명순교자의 묘 ~ 신리성지 ~ 거더리공소 ~ 세거리공소 ~ 하흑공소입니다. 약 17.2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다음에는 버그네 순례길 코스 도보 순례를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 티스토리 블로그에 있는 성당, 천주교 성지와 관련된 모든 사진들은 저의 소중한 시간을 써서 제가 직접 가서 찍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각종 인터넷 매체에 제가 찍은 사진을 불펌하거나 무단으로 올리는 것을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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