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주 신암리성당의 역사(+ 순례 후기)
경기도 양주 신암리는 지금은 농촌의 모습이지만 예전에는 산림이 울창하던 곳이었습니다.
조선 말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면서 형성된 마을이었습니다.
초창기에 형성된 교우촌이 대부분 그렇듯이 신암리 신자들 또한 옹기를 구워만들어 판매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1. 개성 본당 공소
신암리에 송도(개성) 본당 공소가 설립된 것은 1907년이었습니다.
당시 송도 본당 주임 신부는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Le Gendre (루도비꼬 1866~1928) 신부였고, 신암리 공소 초대 회장은 박성로(프란치스코) 였으며 신자수는 약 300여 명이었습니다.
최창근 신부는 1년에 두 차례 부활절과 성탄절에 신암리 공소에 와서 판공 성사를 베풀고 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이때 사제들은 복사와 신자들을 대동하여 기차로 문산까지 왔고, 신암리 공소에서는 회장과 신자들이 60리 산길을 걸어 사제를 맞이하여 신암리로 모시고 왔습니다.
1리가 약 400미터입니다. 그러니 24킬로미터 산길을 걸었던 것이죠. 정말 엄청난 신앙심과 정성입니다.
1919년에는 서산 본당 주임 신부였던 안학만(루카 1889-1944) 신부가 송도 본당 제3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1924년까지 재직하였고, 그 후임으로 서병익(바오로 1881~1948) 신부가 평북 의주 본당에서 부임해 왔습니다.
2. 신암리 본당
제2대 공소회장이던 박원문(마르코) 형제는 교구장인 뮤텔(Mutel) 대주교에게 신암리 본당의 승격을 간청하였습니다.
그 간청이 수락되어서 1925년 3월에 신암리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하게 되었으며, 2년 후인 1927년 5월 초대 주임으로 최문식(베드로 1881~1952 미리내 성지에 안치) 신부가 양양 본당에서 부임하여 왔습니다.
그 당시 관할 구역은 양주군, 연천군, 파주군, 포천군, 가평군, 고양군 일대였습니다.
신암리 본당은 약 3년간 지속되었으며 이때 신자들은 날마다 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를 하면서 기쁘고 충만한 믿음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본당이 가난한 농촌 마을이라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하여 결국 신암리 본당은 1930년 4월에 최문식 신부가 안성 미리내 본당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공소가 되었습니다.
3. 행주 본당 공소(1930~1935)
1930년에 행주성당의 공소가 되었고, 당시 이재현(베네딕도) 형제가 제3대 공소 회장으로 1931~1944까지 봉사하였습니다.
4. 덕정리 본당 공소(1935~ 1946)
1945년에는 제4대 공소 회장이던 김창열 형제의 후임으로 박복선(파비아노) 형제가 임명되어 1978년까지 33년간 공소 회장을 맡아 봉사하였습니다.
제5대 박복선 파비아노 회장은 구 교우 집안으로, 특히 그의 증조부 박화규 다미아노는 병인박해 때 해미(지금의 서산 해미성지)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였습니다.
이때 박 다미아노 순교자의 부인인 한학자 마리아는 시신을 거두어 인근에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5. 의정부 본당 공소(1946~1959)
1946년에 덕정리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김피득(베드로) 신부는 덕정리 성당을 매각하여 의정부로 이전하고 명칭을 의정부 본당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때부터 신암리 공소는 의정부 본당에 속하였습니다.
이후 한국전쟁 때 신암리는 폭격을 당해 아름다운 한옥 2층 성당이 전소되었으나, 수복 후 신암리 신자들의 노력과 영국 군인들의 도움으로 종탑이 있는 양철지붕의 공소 건물을 건립하였습니다.
6. 동두천 본당 공소(1959~2007)
1959년에 동두천 본당이 생기면서 신암리 공소는 동두천 본당 공소가 되었습니다.
신암리 공소 성당은 건축 후 40여 년을 넘기면서 양철지붕과 종탑 십자가가 녹슬고 꺾이는 등 노화되어 방치되던 중 동두천 본당의 도움으로 붉은 벽돌과 기와로 된 작은 경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공소회장은 제6대 우윤욱 요한, 제7대 이근창 레오, 제8대 이정규 베네딕도 형제가 봉사하였습니다.
7. 신암리 본당(2008~
신암리가 고향인 이경훈 바르톨로메오 신부는 어린 시절 이곳 공소에서 신앙을 다졌고, 무엇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신암리 공소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2007년 공소 신자들과 은인들의 도움으로 공소 설립 100주년 기념성당을 건립하고, 이 성당을 성모성심과 외고조부인 박다미아노 순교자의 이름으로 봉헌하였습니다.
새 성전은 2008년 그 당시 의정부 교구장인 이한택 요셉 주교의 축성으로 봉헌되었고 교구에서는 유서 깊은 신암리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습니다.
8. 신암리 성지
의정부 교구장이었던 이기헌 베드로 주교는 2018년 8월 24일 자로 신암리 성당을 이곳이 고향인 이춘근 라우렌시오 순교자 기념 순례지로 지정하였습니다.

이춘근 신부는 베네딕도 수도회 사제로 평양에서 사목하다 6.25 전쟁 중에 순교하신 하느님의 종 일원으로 2026년 현재 시복 절차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25년 6월 29일에 양주 신암리성당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였지만 양주 신암리성당과 주변 자연 경치는 아름다웠습니다.

위 사진처럼 성지 안에는 십자가의 길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나무 표지판에는 성경 구절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신약성경 갈라티아서 5장 16절 내용이지요.

최종태 요셉 선생님의 작품이 부조 프린팅 형식으로 돌에 그려져 있습니다.
최종태 선생님의 작품은 단순해보이지만 깊은 여운을 줍니다.

신암리성당 안에서 순교자 성월 기도를 드렸습니다.
특별히 조선 후기 박해 시기 때, 625 한국전쟁 때 순교하신 모든 분들을 기억하며너 기도를 드렸습니다.
양주 신암리성당 기본정보, 미사 시간
(2026년 5월 25일 기준)
주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감악산로 489번길 27-32
사무실 전화번호 ; 031-862-3455
주임신부 ; 허영민 세례자요한 신부님
주보성인 ; 티없으신 성모 성심
설립일 ; 1925년 3월 1일
대중교통으로 양주 신암리성당으로 가는 방법 ; 서울수도권 지하철 1호선 덕정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2-2번 또는 25번 버스를 타고 가시어 신암리 정거장에서 하차합니다.
(약 35분 정도 걸립니다. 배차 간격이 좀 깁니다. 1시간으로 기억합니다.)
신암리 정거장에서 내려서 왼쪽을 바라보면 신암교라고 작은 다리가 나옵니다. 그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시면 신암리성당을 쉽게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양주 신암리성당 미사 시간
주일 ; 10:30 (교중미사)
월요일 ; 미사 없음
화요일 ; 10:30
수요일 ; 10:30
목요일 ; 10:30
금요일 ; 10:30
토요일 ; 10:30
(미사 시간은 본당 사정에 따라 갑자기 변경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대축일 미사 또한 성당마다 매년 달라질 수 있으니 미사를 가기 전에 해당 성당 사무실에 전화 문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 티스토리 블로그에 있는 성당, 천주교 성지와 관련된 모든 사진들은 저의 소중한 시간을 써서 제가 직접 가서 찍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각종 인터넷 매체에 제가 찍은 사진을 무단으로 올리는 것을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신암리성당 순례 확인 도장 위치는 성당 출입구 앞에 있습니다.
양주 신암리성당 역대 주임사제
초대 ; 김우성 비오 신부님 (2008.10.5. ~
2대 ; 라병국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2014.9.16. ~
3대 ; 현우석 스테파노 신부님 (2018.2.13. ~
4대 ; 연석주 레오 신부님 (2021.2.16. ~
5대 ; 허영민 세례자요한 신부님 (2023.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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