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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천주교순례길2

천주교 성지로서 의금부 터 거룩한 신앙 선조들의 시련을 느낄 수 있었던 의금부 터   조선 시대 사법 기관에는 의금부, 형조, 한성부, 사헌부 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형조, 의금부, 한성부를 삼법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의금부는 고려 시대의 순군만호부제도를 계승한 기관이었습니다. 1414년 태종 때 의금부로 개편되었습니다. 1453년에 순라 업무가 군부인 삼군진무소로 이관됨을 계기로, 국왕의 특별한 명령을 받아서 양반 및 대역죄 등 국가 안위에 연결되는 중죄인의 재판을 담당하였습니다. 금부, 금오, 와부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의금부는 어명으로 사형 선고를 내리던 최고 재판소였습니다.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면서 지도급 천주교인을 국사범, 반역모반죄인으로 엄격하게 다스렸습니다. 주교, 신부, 주요 평신도 지도자들은 대부분 의금부.. 2024. 6. 21.
천주교 성지로서 포도청의 역사와 순례 후기 포도청의 역사와 천주교 성지로서의 의의 포도청의 기원은 조선 성종 때 좌,우 포도장을 임명한 데에서 시작합니다. 정식으로 좌,우 포도청(일명 좌,우변)을 설치한 것은 중종 떄(16세기)로, 이후 350여 년 동안 존속되다가 갑오개혁 때인 1894년 7월에 폐지되었으며, 그 후에는 경무청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좌포도청은 파자교(把字橋) 동북쪽 자리였다고 합니다. (현재 종로구 묘동 56번지, 예전에 영화관 단성사가 있던 자리이고, 현재는 귀금속상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포도청은 혜정교(惠政橋) 남쪽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종로1가 89번지, 광화문우체국과 동아미디어 근처입니다.) 조선시대에 포도청은 포도(捕盜 ; 도둑 잡기)와 순라(치안), 임금 거동시 호위업무를 했습니다.또한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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