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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153

(여자 세례명 추천)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축일 ; 9월 20일)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축일 ; 9월 20일) 동정 순교자인 정정혜 엘리사벳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딸로서, 4살 때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모든 가족이 함께 체포되어, 아버지와 이복 오빠 정철상 가롤로는 순교하였으나 정정혜 엘리사벳은 어머니 유 체칠리아, 오빠 정하상 바오로와 함께 석방되었습니다. 그 뒤 마재의 삼촌 정약용 요한의 집에서 살면서 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친척들의 구박과 냉대를 오히려 그녀의 고결한 덕행과 인내로 이겨나갔고, 결국은 박대하던 몇몇 친척들까지 천주교인으로 입교시켰습니다. 1839년 7월 11일 기해박해 때 정정혜는 서울에서 어머니, 오빠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포청에서 7회의 신문을 받으면서 320대의 곤장을 맞았고, 형조에서도 6.. 2025. 12. 7.
(남자 세례명 추천)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축일 ; 9월 20일)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축일 ; 9월 20일) 순교 당시 정3품 당상 역관(當上譯官)의 높은 벼슬에 있었던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는 서울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특히 철학과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갖고 10년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하였으나 진리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던 중, 1823년 우연히 "천주실의"의 일부분을 구해 읽고는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천주교 진리를 터득하고 곧 입교하였습니다. 1824년 동지사(冬至使)의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서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그 뒤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는 북경 교회와 연락을 담당하며 8차례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정하상 바오로, 조신철 가롤로와 함께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미침내는 교황에게 성직자.. 2025. 12. 6.
(여자 세례명) 권희 바르바라 (축일 ; 9월 20일) 이광헌의 아우구스티노의 부인이며 이 아가타의 모친인 권희 바르바라는 1817년경 남편과 함께 입교하였습니다. 박해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을 맡은 남편을 도와 주교와 신부들을 맞아들였고 또 교우들을 권면하여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습니다.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습니다.특히 열두 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모정을 억제하고 온갖 유혹과 형벌을 견디어 냈습니다. 이렇게 처참한 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4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2025. 12. 5.
(남자 세례명 추천) 성 이윤일 요한 (축일 ; 9월 20일) 성 이윤일 요한은 충청도 홍주에서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그의 집안은 부친 대(代)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이윤일 요한 성인이 언제부터 경상도 문경군 새재 여우목으로 와서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박해가 일어났을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는데, 키가 크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므로 위엄이 있었으며, 신심이 깊고 또 솔직담백하여 주변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그의 가정은 친가와 외가 모두 선대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가문이어서 선친들 중에서는 전교회장과 순교자들도 있었습니다.이윤일 요한도 이러한 가풍을 이어받아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기 본분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1866년 병인년 11월 18일 (음력 10월 12일), 문경 관아.. 202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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