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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153

성녀 아가타 (축일 ; 2월 5일) 아가타 성녀 (Sta. Agatha) (축일 ; 2월 5일) 활동 ; 3세기 경 시칠리아수호성인 ; 간호사, 대장장이, 광부, 안내자축일 ; 2월 5일상징 ; 여성의 가슴, 종려나무 성녀 아가타는 3세기 경 시칠리아 카타냐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 시칠리아의 집정관이었던 퀸치아노는 하층계급 출신 이교도였는데 귀족 출신 처녀 아가타와 결혼하여 많은 것을 얻으려는 얕은꾀를 부렸습니다. 물론 아가타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열받은 퀸치아노는 아가타를 불러서 시비를 걸고 고문을 하는 등 더러운 악행을 일삼았습니다.그런데도 아가타가 담대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자 퀸치아노는 아가타의 가슴을 도려내라는 명을 내립니다.이런저런 수난 끝에 아가타는 순교를 하면서 선종합니다. 그 때는 데치우스 황제 시절.. 2026. 1. 7.
(여자 세례명 추천)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축일 ; 9월 20일)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축일 ; 9월 20일) 동정 순교자인 정정혜 엘리사벳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딸로서, 4살 때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모든 가족이 함께 체포되어, 아버지와 이복 오빠 정철상 가롤로는 순교하였으나 정정혜 엘리사벳은 어머니 유 체칠리아, 오빠 정하상 바오로와 함께 석방되었습니다. 그 뒤 마재의 삼촌 정약용 요한의 집에서 살면서 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친척들의 구박과 냉대를 오히려 그녀의 고결한 덕행과 인내로 이겨나갔고, 결국은 박대하던 몇몇 친척들까지 천주교인으로 입교시켰습니다. 1839년 7월 11일 기해박해 때 정정혜는 서울에서 어머니, 오빠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포청에서 7회의 신문을 받으면서 320대의 곤장을 맞았고, 형조에서도 6.. 2025. 12. 7.
(남자 세례명 추천)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축일 ; 9월 20일)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축일 ; 9월 20일) 순교 당시 정3품 당상 역관(當上譯官)의 높은 벼슬에 있었던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는 서울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특히 철학과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갖고 10년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하였으나 진리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던 중, 1823년 우연히 "천주실의"의 일부분을 구해 읽고는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천주교 진리를 터득하고 곧 입교하였습니다. 1824년 동지사(冬至使)의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서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그 뒤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는 북경 교회와 연락을 담당하며 8차례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정하상 바오로, 조신철 가롤로와 함께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미침내는 교황에게 성직자.. 2025. 12. 6.
(여자 세례명) 권희 바르바라 (축일 ; 9월 20일) 이광헌의 아우구스티노의 부인이며 이 아가타의 모친인 권희 바르바라는 1817년경 남편과 함께 입교하였습니다. 박해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을 맡은 남편을 도와 주교와 신부들을 맞아들였고 또 교우들을 권면하여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습니다.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습니다.특히 열두 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모정을 억제하고 온갖 유혹과 형벌을 견디어 냈습니다. 이렇게 처참한 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4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2025.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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