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남자 세례명) 성 보니파시오 (축일 ; 6월 5일)

by 미남의 전설 2024. 10. 26.
반응형

성 보니파시오

 

성 보니파시오 (St. Bonifacius) 주교 순교자 (675~754, 축일 ; 6월 5일)

 

보니파시오 성인은 영국 웨식스 크레디톤에서 출생 출신입니다.

14세가 되던 해에는 윈체스터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715년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사제가 되자 당시 윈프리드라고 불리던 보니파시오('모든 선행을 하는 자', '좋은 운명'이라는 뜻입니다.)는 교수생활과 설교자의 생활을 잘 해내자, 719년 교황으로부터 라인강 동쪽 이교도들에게 선교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 부근에는 신자도 많지 않고 또한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이교도처럼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보니파시오는 곳곳을 찾아다니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열정적인 선교를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보니파시오 성인은 이교도뿐 아니라 전에 신자였던 사람들도 다시 개종시켜 전교의 성적은 매우 좋았습니다.

교황은 무척 기뻐하며 손수 그를 축성해 전 독일의 주교로 임명했습니다. 때는 722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아직 수많은 이교도들은 여전히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받아들이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참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삼고 그 밑에서 제사를 지내며 귀신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보니파시오는 참나무를 넘어뜨릴 결심을 하고 스스로 이를 감행했습니다.

이교도들은 즉각 천벌이 내려 보니파시오가 당장 죽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처럼 완고하던 주민도 미신을 믿던 신앙에서 각성해 앞을 다투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개종한 민중의 신앙을 견고케 하고, 또한 그들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곳곳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건설했습니다.

 

70대의 나이가 되어도 열정적으로 선교를 하던 보니파시오 성인은 754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 본강 근처에서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려고 준비하던 중에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고 동료 52명과 함께 살해되어 순교합니다.

 

보니파시오 성인은 '게르만 민족의 사도' 내지 '독일의 사도'로 불리며 공경받고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