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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남자 세례명) 성 앵베르 범세형(笵世亨) 라우렌시오 주교 (축일 ; 9월 20일)

by 미남의 전설 2025.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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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교구 2대 주교로서 순교한 성 앵베르 주교 (축일 ; 9월 20일)

 

위 사진은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에 있는 성 앵베르 주교 부조 작품입니다.
위 사진은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에 있는 성 앵베르 주교 부조 작품입니다.

 

성 앵베르 범세형 라우렌시오 주교의 본명은 성 로랑 조제프 마리위스 앵베르(Laurent Joseph Marius Imbert)였습니다.

한국 이름은 범세형(笵世亨)이었습니다.

앵베르 주교는 1796년 3월 23일 프랑스 마리냥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18년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천주교 조선교구 초대 주교 브뤼기에르가 조선 입국을 앞두고 갑자기 선종하자, 1836년 4월 26일 앵베르는 천주교 조선교구 2대 교구장과 카프사(Capsa)의 명의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1837년 5월 14일 그는 만주를 통하여 천주교 박해가 행해지던 조선으로 잠입하였습니다.

 

몰래 천주교의 전도 활동과 교세 확장에 힘쓰던 앵베르 주교는 1839년 8월 10일 밀고를 당하였습니다.

체포당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시간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미사를 올린 뒤 그를 기다리던 관리들에게 가서 자현하였습니다.

그는 한양으로 보내져 해외 선교의 거처를 알기 위한 조선 관리들에 의하여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모든 해외 선교사들이 행방을 드러내면 개종한 신자들이 용서받을 것이라 생각한 그는 동료 천주교 신부인 피에르 모방 신부와 자크오노레 샤스탕 신부에게 조선 관가로 가서 자현할 것을 권고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좋은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라고 썼습니다.

 

세 성직자는 함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개종시킨 천주교 신자들의 이름과 행방에 대하여 3일 동안 심문을 받았습니다.

계속되는 고문에도 자백하지 않은 그들은 다른 감옥에 수감된 뒤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참수당하였습니다.

그의 유해는 길에 방치되어 있었다가, 약 20일이 지나서야 노고산에 묻혔습니다.

그러다가 1843년 경기도 과천으로 이장되었으며, 1901년 지금의 명동대성당 지하실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1925년 79명의 조선 순교자들을 시복할 때 이 세 명의 순교자들이 함께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서울에서 103명의 순교자들을 시성할 때 함께 시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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