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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남자 세례명) 성 조신철 가롤로 (축일 ; 9월 20일)

by 미남의 전설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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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순교성지에 있는 조신철 가롤로 성인 그림입니다. 김태 바오로 작가님 작품입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에 있는 조신철 가롤로 성인 그림입니다. 김태 바오로 작가님 작품입니다.

 

성 조신철 가롤로 (1796~1839) (축일 ; 9월 20일)

 

조신철 가롤로 성인은 조선시대 신분상 ‘하인’으로 분류되는 마부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비천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 준 주인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한국 천주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성 조신철은 강원도 화양에 살던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안 되는 가산은 아버지가 탕진해 앞길이 캄캄했던 소년 조신철은 집을 떠나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스님들과 같이 몇 해를 지냈습니다.

그 후 환속하여 서소문 밖에서 이집 저집 다니며 머슴살이로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다 23세 때 매년 동짓달 중국으로 파견되는 사절단(동지사)의 종인 마부(馬夫)로 일하기 시작했다.

 

성 조신철은 성 유진길(아우구스티노·1791~1839)에게서 신앙을 배웠습니다. 자신에게 신앙을 전해준 이처럼 성인 품에 오른 것입니다.

 

성 조신철은 마부로 일하며 정직하고 용감해 동료들로부터 호감을 샀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사신을 따라다니던 역관(譯官) 성 유진길의 눈에 띄었습니다.

성 조신철의 성실한 모습을 보고 장차 조선 교회의 큰 일꾼으로 삼고자 입교시키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지요.

 

성 조신철은 그와 동행하며 세례와 견진을 모두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배움이 짧았던 그였기에 처음에는 쉽게 풀어주는 교리조차 알아듣지 못했으나 거듭된 노력 끝에 하느님을 진심으로 믿게 됐다고 전해집니다.

 

조신철 성인은 하느님을 믿게 된 기쁨에 넘쳐 신입 교우들을 자기 힘닿는 데까지 도우며 봉사했습니다. 또 아내에게 신앙을 권유해 입교시켰습니다.

조신철 성인은 조선 사회의 비천한 지위였음에도 오히려 그 지위를 사용해 조선 교회에 공헌했습니다.

동지사 마부로서 북경 천주교회와의 연락과 성직자 영입 운동 등에 깊게 관여한 것입니다. 특히 모방 신부의 통역관이 되어 지방 전교 사업에 이바지하기도 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어느 날 성 조신철의 꿈에 예수님이 베드로, 바오로 사도를 거느리고 나와 “올해 너에게 나의 영광을 위해 피를 흘리는 특별한 은혜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꿈 속 말씀대로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성인은 일단 처가로 피신했습니다.

음력 5월, 포졸들이 처가를 습격해 그의 가족들을 결박하고 어린 젖먹이까지 잡아가자, 성인은 포도청으로 달려가 자수했습니다.

포도청·의금부에서 여러 차례 신문을 받는 도중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이 집에서 발견된 데다가 서양인 신부들의 은신처를 알려는 관헌들에 의해 혹독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어떤 형벌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신앙을 지킨 조신철 성인은 1839년 9월 26일 44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됐습니다.

사형 집행장으로 가는 와중에 성인은 옥리에게 “나는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인데, 내 가족에게 용기를 내어 나를 따라오라고 전해 주시오”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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