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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남자 세례명)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축일 ; 9월 20일)

by 미남의 전설 2024.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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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성당 주보성인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1805~1839)
서울 역삼동성당 주보성인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1805~1839)

 

'영눌' 또는 '치운'으로도 불리던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충청도 홍주(洪州) 지방 다락골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한국교회의 창설시대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온 집안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성장해서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곳을 찾아 다니다가 가족들을 설득하는데 성공,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그러나 외교인들의 탄압 때문에 서울을 떠나 강원도 금성(金城), 경기도 부천을 거쳐 과천(果川)의 수리산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건설했습니다.

 

1836년 아들 최양업(崔良業)을 나(모방) 신부에게 보내어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하게했습니다.

 

그는 1839년 초에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자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교우촌 교우와 가족 도합 4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수리산에서 서울의 포청까지 끌려간 최경환은 2개월 동안 하루 걸러 형벌과 고문을 당해 태장 340도, 곤장 110도를 맞았습니다. 9월 11일 최후로 곤장 25도를 맞고는 그 이튿날 옥사, 순교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34세였습니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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