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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천주교성지순례길3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전옥서 터 천주교 성지로서 "전옥서"의 의미 전옥서는 형조에 속한 감옥으로서, 죄인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였습니다. 전옥서는 남자 옥사와 여자 옥사로 구분되어 설치했었으며, 수감된 죄수의 대부분은 상민이었습니다. 때에 따라 의금부나 육조, 왕실의 계보를 편찬하고 왕족의 허물을 살피던 관아였던 종부시, 사헌부 소속의 왕족이나 양반, 관리도 수감되었습니다. 천주교 박해 시기에는 많은 천주교인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전옥서에 수감되었습니다. 천주교 103위 성인 중 전옥서에 수감되어 있다가 혹독한 감옥 생활로 순교한 성인은 이호영 베드로와 김 바르바라였습니다. 이호영 베드로 성인은 성녀 이소사 아가타의 동생으로서 1835년 누나와 함께 체포되어 1839년 형이 집행되기까지 4년 동안의.. 2024. 6. 23.
(천주교 서울대교구) 형조 터 한국 천주교 성지로서 형조 터의 의미  형조는 조선 시대의 중앙 관서인 육조 중의 하나였습니다. '추관' 또는 '추조'라고도 하였으며 사헌부, 한성부와 아울러 삼법사라 일컬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형조는 한성부 서부 적선방에 있었는데,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많은 천주교인이 형조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습니다. 그 시작은 정조가 즉위한 지 9년째 되었던 1785년에 발생한 '을사추조 적발사건'이었습니다.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 토마스 집에서 신앙 집회를 갖던 신자들이 금리들에게 발각되어 형조로 압송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최필공 토마스, 최필제 베드로, 윤운혜 루치아, 정철상 가롤로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천애 안드레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유지헌 프란치스코.. 2024. 6. 21.
천주교 성지로서 경기감영 터의 역사 천주교 성지로서 의미를 지닌 경기감영 터  1784년 명례방에서 조선 천주교회가 창립된 이후로 성장해 오던 경기 지역의 신앙 공동체들은 신유박해(1801)를 기점으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때 경기도 지역의 신자들이 끌려와 형벌과 문초를 겪으며 신앙을 지켰던 곳이 바로 경기감영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순교한 순교자 중에서 2014년 복자품에 오른 조용삼 베드로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에게 천주교 신앙을 배우며 따르다가 체포되어 세례도 받기 전에 11개월 동안 감옥게 갇혔습니다. 옥중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은 조용삼은 1801년 2월에 다시 감사 앞에 끌려나가 배교를 강요당하면서 형벌을 받았습니다. 결국 다시 옥에 갇힌 지 며칠 지난 3월 27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형벌 때에 박해..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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