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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성지순례6

서울대교구 광희문 천주교 성지순례(+미사 시간 안내) 광희문(光熙門)은 1396년(태조 5년) 한양 도성을 창건할 때 세운 사소문(四小門)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 천주교 성지로서 광희문의 의미와 역사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파괴되었던 광희문은 1711년(숙종 37년) 문루를 중건하고 곧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달게 되었습니다. 또한 청계천의 물이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오간수문(五間水門)과 이간수문(二間水門) 등에 가까웠기 때문에 수구문(水口門)이라고 불렸으며, 이와 더불어 도성 내 백성들의 시신이 성 밖으로 가는 출구 역할도 하였기에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한양 도성 내 중부에 위치한 좌&우 포도청, 형조전옥, 의금부 옥 등에서 병사, 장살, 교수형 등으로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은 그 가족 친지들이 바로 시신을 수습하지 못.. 2024. 6. 16.
거룩한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왜고개 성지와 군인 사목의 중심지인 국군 중앙 주교좌성당 왜고개 성지는 와현(瓦峴), 또는 왜고개라고 칭하였던 장소로서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瓦署)가 있었던 데에서 유래합니다.명동대성당과 약현성당을 지을 때 사용했던 벽돌들도 이곳에서 만들어서 조달하였다고 합니다.서슬 퍼런 박해시대에 열 분의 순교자들의 시신이 이곳에 잠시 묻혔습니다.(왜고개 성지 순례확인 도장은 위 사진 속에 있는 십자고상 맞은 편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 모신 곳 바로 옆에 있습니다.) 열 분의 순교자 시신을 모셨던 왜고개 성지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병오박해 때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서 야고보 등 교우들에 의해 왜고개로 옮겨 잠시 모시다가 나중에 안성 미리내로 이장되었습니다.2. 왜고개는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일곱 .. 2024.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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