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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성지순례75

삼성산성당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드리고 삼성산 성지 순례를 하였습니다.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고 나서 이 땅에는 목자 없이 평신도들이 천주교 신앙을 유지하였습니다.그러다가 30여 년이 지나고 나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가 입국하고 천주교 조선대목구는 독립된 조직을 갖추고 신앙 전파에 깊이를 더하게 됩니다.그러나 조선 조정의 탄압으로 세 분의 사제는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를 하게 됩니다.이 분들의 성해는 사흘동안 방치되다가 한강변 새남터에 묻히고 20여 일 정도 지나서 교우들이 매서운 감시를 피하여 세 분의 유해를 거둡니다.노고산(지금의 서강대 자리)에 4년 간 매장되었다가, 박순집 바오로의 선산이었던 삼성산으로 이장되어 58년간 모셔집니다. 현재는 명동성당 지하묘소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삼성산 .. 2024. 5. 15.
곡성성당 자리는 정해박해 진원지로서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해박해는 1827년(순조 27년)에 전라남도 곡성에서 시작되어 전라도 지역, 경상도 상주, 충청도, 서울 일부 지역에서 약 3개월 동안 일어났습니다.곡성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의 신자들이 을해박해(1815년)를 피하여 곡성군 오곡면 미산리와 승법리로 이주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이들 교우들은 다른 신자들도 주로 했던 것처럼 생계유지와 신분 노출 방지를 위하여 옹기를 구우면서 생활하였는데, 1827년에 일어난 정해박해로 인하여 다시 탄압을 받고 이곳 교우촌은 무너졌습니다. 정해박해의 원인, 과정, 특징, 결과 정해박해는 신자들 사이에서 작지만 불미스러운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1827년 2월 전라남도 곡성군 덕실(현재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승법리) 마을의 옹기점에 전 아무개(성 씨만 알 .. 2024. 5. 15.
거룩한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왜고개 성지와 군인 사목의 중심지인 국군 중앙 주교좌성당 왜고개 성지는 와현(瓦峴), 또는 왜고개라고 칭하였던 장소로서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瓦署)가 있었던 데에서 유래합니다.명동대성당과 약현성당을 지을 때 사용했던 벽돌들도 이곳에서 만들어서 조달하였다고 합니다.서슬 퍼런 박해시대에 열 분의 순교자들의 시신이 이곳에 잠시 묻혔습니다.(왜고개 성지 순례확인 도장은 위 사진 속에 있는 십자고상 맞은 편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 모신 곳 바로 옆에 있습니다.) 열 분의 순교자 시신을 모셨던 왜고개 성지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병오박해 때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서 야고보 등 교우들에 의해 왜고개로 옮겨 잠시 모시다가 나중에 안성 미리내로 이장되었습니다.2. 왜고개는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일곱 .. 2024. 5. 15.
전주 전동성당 자리에서 이 땅의 천주교 첫번째 순교가 있었습니다. 전동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 '풍남문 밖'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순교한 곳이며, 호남의 사도인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초기 전라도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순교한 거룩한 공간입니다.한국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전동성당 자리에서 순교를 하였습니다. 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6대 손으로서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에서 태어나 25세에 진사에 급제하얐습니다. 또한 정조 때 좌상인 채제공의 신망을 받아 장래가 촉망받는 선비였습니다.1791년(신해년) 5월에 모친(권상연의 고모) 상을 당하자 외종형 권상연과 상의한 후에 모친의 유언과 천주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제사를 하지 않았습니다.폐제분주(廢祭焚主 ;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우는 것)로 인.. 202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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