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보나벤투라 (St. Bonaventura , 1221 ~1274) (축일 ; 7월 15일)
보나벤투라 성인은 이탈리아 중부 바뇨레아에서 태어나 그곳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반니 디 피단차였는데 수도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보나벤투라로 바꿨습니다.
어릴 때에 큰 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였는데, 신앙심이 깊은 그의 어머니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아들을 데려가 기도를 부탁했는데,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도하고 강복한 뒤 바로 나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병이 완쾌된다면 그를 수도원에 보내겠다고 서약했고,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뻐하며 “오! 보나벤투라(기쁜 일이여)”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이름이 ‘보나벤투라’가 되었습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수도자가 되기 전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습니다.
파리대학교 문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243년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드디어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습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1248년부터 파리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가르쳤는데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과 서로 격려하면서 중세 신학의 기반을 확립했습니다. 이들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젊은 학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탁발 수도자가 대학교를 잠식한다며 일반 교수들이 그들의 교수직을 반대합니다. 어디 가나 중상모략하는 인간들이 있는 법이지요.
결국 알렉산데르 4세 교황의 개입으로 탁발 수도회에 대한 공격이 중단됐습니다.
이후 보나벤투라 성인은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으로 선출됩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학자로서, 프란치스코회 총장으로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는 수도회 내부의 분쟁을 해결하고 창설자인 프란치스코의 참 정신과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1260년에는 프란치스코회의 회칙을 개정했고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새로 작성하였습니다.
1265년, 영국 요크의 대주교좌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1271년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의 선출을 적극 지지했으며 1273년 알바노의 교구장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이듬해에 교황이 로마와 동방교회의 일치를 토의하려는 리옹 공의회의 의사일정을 짜도록 그를 위촉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동안 보나벤투라 성인은 그곳에서 선종하고 말았습니다.
교회학자 보나벤투라 성인은 중세 시대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면서 사상가입니다. 그는 ‘세라핌 박사’로 알려졌고, ‘베드로 롬바르드의 금언에 대한 주석’,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세 갈래 길’, ‘완덕 생활’ 등 영성 서적과 약 500편의 설교를 비롯해 수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148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보나벤투라 성인을 시성했고 1588년 식스토 5세 교황은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했죠.
보나벤투라 성인은 후대의 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위대한 학자이면서 성실하고 겸손한 수도자였습니다. 그는 또 신학자, 농부, 짐꾼, 직조공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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