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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남자 세례명 추천) 성 힐라리오 (축일 ; 1월 13일)

by 미남의 전설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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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라리오 성인 (St. Hilarius) (315 ~ 367) (축일 ; 1월 13일)

 

성 힐라리오 주교 학자 (St. Hilarius) (315 ~ 367) (축일 ; 1월 13일)

 

힐라리오 성인은 프랑스 중서부 푸아티에의 이교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중년에 우연한 기회에 성경책을 접하고 그리스도교를 연구했습니다.

성경으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깨닫고는 곧 세례를 받고 그의 아내와 딸도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힐라리오 성인은 학식이 뛰어나고 명망이 높아 고향 푸아티에 교구의 주교로 선출됩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아리우스 이단이 독버섯처럼 늘어났기에 힐라리오 성인은 아리우스 이단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언변과 문장으로 온 힘을 다하여 이단들의 회개와 개종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단자들은 오히려 힐라리오 성인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힐라리오 성인이 단호하게 버티자 황제에게 역적이라고 고발을 당하게 되어 힐라리오 성인은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로 추방당합니다.

 

힐라리오 성인은 고향에서 멀리 떠나 귀양을 가면서도 전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앙심을 더욱 깊게 하여 그 지역 이단자들과 신학논쟁을 통해 그들을 설득시켰고 고국의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도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에 충실하라고 독려합니다.

 

특히 이곳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삼위일체론'을 남겼습니다.

 

힐라리오 성인은 귀양에서 돌아와 더욱 열성적으로 이단을 물리쳐서 결국은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벨기에, 독일 서쪽 일부 지역)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동방교회의 4대 교부로 불리는 아타나시오 성인과 비견해 힐라리오 성인을 ‘서방교회의 성 아타나시오'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힐라리오 성인은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면서 음률을 붙인 찬미가를 활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와 시편의 주해서를 만들었고 그의 제자 마르티노 성인과 함께 갈리아 지방에서 수도원 제도를 장려했습니다.

 

그는 367년이나 368년에 선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851년 5월 13일 교황 비오 9세가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했습니다.

 

‘힐라리오'는 ‘쾌활한, 발랄한'이란 뜻의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귀양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연구를 이어간 힐라리오 성인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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