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tholic Life (+천주교 기도문)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시성을 위한 (천주교 제주교구) 기도문

by 미남의 전설 2025. 2. 28.
반응형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시성을 위한 기도문

 

생명의 원천이시며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척박하고 외딴 섬, 제주에

신앙의 선물을 내려 주셨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도록

믿음의 용기를 허락하셨나이다.

 

사랑 지극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우리 고장의 구원을 위해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를 선택하시어

복음의 씨앗을 뿌리게 하셨으니

자비로우신 섭리에 감사를 드리나이다.

 

이 고장의 첫 영세자인 그는 1867년 병인박해 때에

주님의 풍성한 은혜에 힘입어

주님을 용감히 증거하며 피 흘려 순교하였나이다.

 

지극히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가 믿음과 정성을 다하여 간절히 청하오니,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를 성인의 반열에 들게 하시어

주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에게는 복음전파와 신앙증거의 귀감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순교자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사진은 제주교구 김기량 순교 기념관 지하 경당에 있는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복자 그림입니다.

 

(위 사진은 제주교구 김기량 순교 기념관 지하 경당에 있는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복자 그림입니다.)

 

김기량 (金耆良) 펠릭스 베드로는 1816년 제주도 조천읍 함덕리 태생입니다.

 

배를 타고 장사를 하던 그는 1857년 풍량으로 중국 광동 해역까지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배에 구조된 뒤 홍콩에서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와 조선 신학생 이 바울리노를 만나 천주교 교리를 배웠습니다.

1857년 5월 31일 루세이유 (Rousseille)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아 제주 출신 첫 영세자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귀국 직후 최양업 신부와 페롱(Feron) 신부를 만나 '제주의 사도'가 될 것을 굳게 약속하였으며, 귀향 후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주교로부터 제주에 선교사 파견을 약속받기도 하였습니다.

 

1865년, 두번째로 표류하여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 뒤 프티장(Petitjean) 신부를 만나서 다시 귀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무렵 자신의 순교를 예견한 '천주가사'를 지어 불렀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경상도 통영에 장사하러 나갔다가 천주교 신자란 사실이 드러나 체포되었습니다.

모진 형벌에도 굳게 신앙을 지켰으며, 결국 1867년 1월(음력 1866년 12월) 교수형으로 장렬하게 순교하였습니다.

박해자들은 그의 신앙을 두려워하여 가슴에 대못을 박기까지 하였습니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섬에 처음으로 신앙의 씨앗을 뿌린 '제주의 사도' 이자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마침내 2014년 8월 16일,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123위와 함께 영광스러운 복자품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제주 김기량성당 안에 있는,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자의 흉상입니다.

 

위 사진은 제주 김기량성당 안에 있는,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자의 흉상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