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성 그레고리오 대 교황 (축일 ; 9월 3일)

by 미남의 전설 2024. 8. 27.
반응형

성 그레고리오 대 교황 (축일 ; 9월 3일)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1세 대 교황

 

활동시기 ; 6세기 이탈리아

축일 ; 9월 3일

상징 ; 비둘기 모양의 성령

특이사항 ; 제64대 교황, 4대 교부학자 중의 한 분.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이 많습니다. 그 중 첫 번째 교황은 그레고리오 대(Magnus)교황으로 불리는 그레고리오 1세(540~604)였습니다.

 

가톨릭의 4대 교부는 그레고리오 대 교황과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예로니모 이렇게 4분의 성인이시며, 그 중에서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가장 영향력 있는 교황 겸 저술가 겸 학자였습니다.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로마의 부유한 명문가 출신으로 부친 조르다노는 원로원 의원이었습니다.

 

그레고리오는 법학을 공부했고, 그리스어에도 능통한 엘리트 청년이었습니다.

573년에 그는 로마시장(Praefectus urbis)이 되었습니다. 이 때의 행정 경험은 이후의 교황직 수행에 도움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교회와 국가의 관계와 문제점에 큰 통찰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73년 부친이 사망하자 그레고리오는 물려받은 유산의 대부분을 교회에 봉헌하였습니다. 본인의 저택을 성 안드레아 수도원으로 만들었고, 시칠리아에 수도원을 5개나 지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사업을 했고, 엄격한 베네딕토회 수도자의 길을 충실히 걸음으로써, 당시 로마제국의 많은 귀족들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충실하게 실천했습니다.

 

그레고리오는 578년 교황 베네딕토 1세의 권유에 따라 수도원을 나와서 부제 서품을 받고 이후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590년에 로마 시민과 원로원에 의해 교황으로 추대되어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레고리오 1세는 교황이 되어서도 수도자의 생활을 계속했고, 스스로를 '하느님의 종의 종'이라 칭하며 문란해진 교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결혼을 금지시켰습니다.

 

그가 교황이 되고 나서 하였던 첫 번째 사업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식량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북부, 갈리아 남부, 시칠리아, 이탈리아 등지의 로마교황청 영토를 재조직하여 각 지역마다 행정관을 임명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했습니다.

 

그레고리오 대 교황의 많은 업적 중 주교 선출 규정을 제정한 일과 이민족의 개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로마를 침략한 롱고바르도족을 방어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개종시켰습니다.

또한 앵글로색슨족을 개종시키기 위해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많은 선교사를 영국 캔터베리로 보내 현지인들을 개종시켰고, 영국교회와 로마교회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특별히 성가에 관심을 가져 성가를 모으고 수정하고, 심지어 직접 작곡을 하여 오늘날 "그레고리안 성가"라고 부르는 무반주 라틴 성가의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604년에 로마에서 선종하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