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제물진두 천주교 성지의 역사, 순례 후기
인천 제물진두 순교 성지는 병인박해 때 프랑스와의 병인양요, 미국과의 신미양요 등을 치른 후, 외적과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여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려는 의도에서 대원군 정권이 서울 한강변의 양화진두(지금의 절두산 성지)와 함께 천주교인들에 대한 공개 처형장으로 고른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868년 4월 15일에는 부평 읍내에 살던 손 베드로 넓적이(박순집의 이모부), 김씨(손 베드로의 부인, 박순집의 이모), 백치문 사도요한(손 베드로의 사위)은 포졸에게 잡혀 서울 포도청에서 고문과 신문을 받고 인천 제물포로 압송되어 제물진두에서 4월 20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신미양요가 있었던 1871년에는 남양에 살던 이승훈 베드로의 증손자이며 이재의 토마스의 두 아들 이연구, 이균구가 인천 바닷가에서 미군 함정을 살피다가 체포되어 미군 배에 들어가 길 안내를 하려고 하였다는 죄목으로 효수경중(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아서 뭇사람을 경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을 받아 순교하였습니다.
1871년 5월 21일에는 인천에 살던 이재겸(이승훈의 손자, 이신규의 아들)의 부인 정씨, 이명현(정씨의 손자), 백용석, 김아지(김애기) 또한 사학죄인으로 이곳에서 효수경중 되었습니다.
또한 김대건 안드레아 부제가 1845년 4월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하여 이곳 가까운 포구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뜻깊은 역사도 있습니다.
지난 2024년 5월 16일에 인천 제물진두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위로와 자비의 주님"이라는 제목의 예수님 모습입니다. 사진의 예수님 십자고상 아래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내가 삶에 지쳐 힘들어 할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곳 순교자들이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랑했기에 천상의 기쁨을 얻은 것처럼,
절망과 아픔의 역경 속에서도 늘 나에게 손을 뻗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손을 잡고 힘내어 살라는 뜻으로,
여기 제물진두 순교성지에는 나에게 오른팔을 내려 뻗으시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계십니다.
위 사진 속의 예수님 동상의 오른손을 잡았을 때 왠지 모르게 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순교 성지 경당 안에서 순교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물진두 순교성지는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부분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고 외국인 수녀들이 입국한 곳이기도 합니다.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4분이 조선 선교를 위하여 입국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바로 기념비입니다. 최종태 요셉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순교 성지 큰 길 건너편 인천 중부경찰서 앞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기념비 제목이 눈에 띄입니다.
인천 제물진두 순교 성지 기본정보, 미사시간 (2024년 9월 8일 기준)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40 (우편번호 ; 22314)
사무실 전화번호 ; 032-764-4193
미사시간 ; 월요일 ~ 토요일 ; 14:00
(공휴일과 주일에는 미사 없습니다. 이 때 순례 오시는 분은 가까운 해안성당이나 다른 가까운 순례지 답동 주교좌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시면 됩니다.)
대중교통으로 오는 길 ; 지하철 인천역 1번 출구에서 남쪽으로 300미터 걸어오시면 바로 찾으실 수 있습니다.
답동 주교좌성당은 아름다운 겉모습과 성전 안 예쁜 유리화를 가진 성당입니다. (+미사 시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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