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신앙 선조들의 시련을 느낄 수 있었던 의금부 터
조선 시대 사법 기관에는 의금부, 형조, 한성부, 사헌부 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형조, 의금부, 한성부를 삼법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의금부는 고려 시대의 순군만호부제도를 계승한 기관이었습니다. 1414년 태종 때 의금부로 개편되었습니다. 1453년에 순라 업무가 군부인 삼군진무소로 이관됨을 계기로, 국왕의 특별한 명령을 받아서 양반 및 대역죄 등 국가 안위에 연결되는 중죄인의 재판을 담당하였습니다. 금부, 금오, 와부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의금부는 어명으로 사형 선고를 내리던 최고 재판소였습니다.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면서 지도급 천주교인을 국사범, 반역모반죄인으로 엄격하게 다스렸습니다. 주교, 신부, 주요 평신도 지도자들은 대부분 의금부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조선 조정 입장에서는 천주교 교리가 유교통치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습니다.
신해박해(1791년)때에는 이 땅의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가 의금부에서 국문을 받았고, 신유박해(1801)때에는 권철신 암브로시오, 주문모 야고보 신부, 최창현 요한 회장도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했습니다.
기해박해(1839년) 당시 엥베르(범) 라우렌시오 주교, 모방(나) 베드로 신부, 샤스탕(정) 야고보 신부, 정하상 바오로 성인 등 주교와 신부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 역시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혹독한 국문과 고초를 당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도 베르뇌(장) 시메온 주교, 브르트니에르(백) 유스토 신부, 도리(김) 베드로 신부, 볼리외(서) 루도비코 신부들과 남종삼 요한, 전장운 요한, 최형 베드로, 정의배 마르코 성인이 문초를 당하여 마지막까지 신앙을 지킨 거룩한 곳입니다.
2022년 11월 30일이 개인적으로 저의 축일(성 안드레아 사도)였습니다. 휴가를 내고 서울로 천주교 성지순례를 왔습니다. 이 날은 매우 추웠는데, 의금부에서 매서운 시련을 당한 신앙 선조들의 희생을 떠올렸습니다.
현재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 인근의 SC제일은행 화단에 표지석이 있습니다.
참고로, 순례확인도장은 종로성당(전화번호 02-765-6101)에서 찍으셔야 합니다.
아래 글은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에 대하여 제가 작성한 글 링크입니다.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 내용, 성지 167 장소, 성지순례 의미 설명 (sacred-and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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