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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쯤 성당 여행324

옥천성당은 파스텔 톤이 아름답고 역사 깊은 성당입니다. 옥천에 공소가 처음 설립된 때는 1903년 11월이었습니다.공주본당(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성당) 제2대 주임신부 파스카에 신부가 옥천으로 직접 와서 박 바실리오 외 5명에게 세례를 준 기록이 있습니다.1906년 5월에 금사리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공주본당에서 분리, 독립되었습니다.초대 주임신부로는 홍병철 루카 신부님이 부임하였습니다. 그는 한국 11번째 사제로서, 말레이시아 페낭신학교와 서울 용산성심신학교를 거쳐서 1899년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홍병철 루카 신부님은 1906년 15칸짜리 옛 가옥을 성당과 사제관으로 개조하고 옥천읍 이문동(지금의 문정리)에 첫 본당을 열었습니다.처음에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주보성인으로 하였으나, 나중에 변 로이 신부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주보성인을 바꾸었.. 2024. 5. 15.
대전 대흥동성당은 대전 가톨릭을 상징하는 성당입니다. 대전 대흥동 주교좌성당은 국가등록문화재 제643호입니다.일반적으로 50년 이상 된 건축물 중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선정합니다. 대전 대흥동성당의 역사와 특징 그리고 "방지거 아저씨" 대전 대흥동 주교좌성당은 1962년에 준공된 건축물입니다.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는 손 모양을 형상화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벽돌을 쌓은 것이 아닌 철근 콘크리트 구조입니다.주교좌성당에서 주교좌는 교구 차원에서 성당에서 중요한 의식이나 큰 행사가 생길 때 주교가 앉는 의자를 뜻합니다.이 의자는 주교의 직위, 권위 등을 의미하기에 주교좌성당은 교구의 중추적인 성당으로서 주교가 직접 관할하며 미사도 집전합니다.대전교구에서 부제서품식이나 사제 서품식 등을 대흥동성당에서 자주 하고, 교구 차원(특히.. 2024. 5. 14.
서울 혜화동성당은 천주교회 미술의 보물창고 같습니다. 혜화동은 일찍이 잣나무골(栢桐-백동)이라고 불리던 고장입니다.조선 태종 때 공신 조은이 이 자리에 잣나무를 많이 심고 그 잣나무 사이에 백림정(柏林亭)을 짓고 지낸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본당의 정식 명칭은 혜화동 본당이지만 백동 본당으로 많이 불리었다고 합니다.초기 시절의 백동 본당 신자들은 혜화문(동소문)을 통하여 성당 출입을 빈번히 하였다고 합니다.혜화동 본당은 대한민국에 진출한 성 베네딕토 수도회가 닦은 터전 위에 설립되었고, 명동 본당, 중림동 본당(약현성당)에 이어 서울의 세번쨰 본당으로 1927년에 설립되었습니다.1937년에 혜화유치원이 개원되었으며, 1960년 6월 25일에 오늘날의 성당 건물이 준공되었습니다.이후 본당의 교세가 증가하면서 제기동, 길음동, 신당동, 성북동 본.. 2024. 5. 14.
서천 장항성당 (+미사 시간 안내) 서천 장항성당은 예전 장항역 근처에 있습니다.장항선 일부가 직선화 사업으로 장항역이 기존 위치에서 동쪽으로 꽤 멀리 이전하였습니다. 예전 장항역은 잠시 화물역으로 쓰이다가 결국 폐역되었습니다.세월이 흐름에 따라 예전 장항역이 위치한 장항읍이 활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제가 꼬마 시절만 해도 활기가 넘치던 장항읍이었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제 고향이 서천이거든요. 장항성당 역사와 미사 후기 1936년도에 장항공소가 설립되었고, 1943년에 장항 본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초대 주임신부는 박성춘 레오 신부님이었습니다.작년 7월 여름에, 근처에 있는 할매온정집에 가기 전에 장항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아무래도 신자들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더군요. 빠른 속도로 신자층이 노령화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202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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