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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성지순례75

대구대교구 비산성당 (+미사 시간) 비산(飛山) 즉 날뫼 지역은 대구 지역에서 비교적 초기에 가톨릭 신앙 전파된 곳으로, 1868년 서울 절두산에서 순교한 이 알로이시오 곤자가(1868년 순교) 가정이 1839년의 기해박해 이전부터 이곳에서 거주하였다고 합니다.그리고 상주에서 살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대구 관덕당(지금의 관덕정 순교기념관 자리)에서 순교한 성 이윤일 요한의 매부도 이 무렵 날뫼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의 시신을 날뫼 뒷산에 묻은 이응칠 토마스 가정, 최술이 마티아 가정, 신극중 다미아노 가정, 송기택 프란치스코 가정이 중심이 되어 날뫼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이들이 중심이 되어 신앙의 자유기에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1909년 대구 본당의 로베르(한국명 김보록) 신부에 의하여 날뫼 공소가 .. 2025. 11. 24.
춘천교구 행정공소 (+미사 시간) 행정공소의 역사와 순례 후기 행정 공소는 본래 외교인 촌이었으나 1928년 신자 두 가족이 이주하면서 교우촌이 시작되었습니다.양평 용문과 강릉 금광리에서 온 신자 두 가족이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에는 배타적인 이웃들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이들은 토지를 매입하고 옹기점을 운영하면서 주변 이웃들에게 진심으로 애덕을 실천했고, 결국 신자들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례(喪禮)가 났을 때 외교인들은 미신적인 관습으로 인해 장삿집에 가기를 꺼렸으나 신자들은 장삿집을 방문하여 연도를 바치고 상례를 도우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이러한 신자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전교 활동이 되었고, 신자가 점차 증가하면서 공소도 설립되었습니다. 공소 건물은 김창석 아우구스티노 공소회장이 주축이 되어 한국전쟁.. 2025. 11. 24.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성당, 횡성 풍수원 예수 성심 성당 (+미사 시간) (위 사진은 제가 2025년 11월 16일에 횡성 풍수원성당에 성지순례 와서 찍은 사진입니다. 풍수원성당 성전 건물 앞에 신자들이 많이 모여있었는데, 이 날 마침 원주교구 제3대 교구장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님이 풍수원성당에 사목방문을 오신 날이었습니다.) 신앙선조들의 피신처, 사제 성소의 요람, 강원도 첫 본당 ; 횡성 풍수원성당의 역사와 특징 대한민국에서 3 글자로 이루어진 지명 중에서 원(院)으로 끝나는 곳의 대부분(이태원, 조치원, 인덕원, 장호원, 신례원)은 역원(驛院)이 있던 곳입니다. 원(院)은 고려 / 조선 시대 관원들이 공적 업무로 다닐 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며 역(驛)은 말을 갈아타거나 쉬게 하던 곳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물자, 정보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었기.. 2025. 11. 19.
춘천교구 양양군 양양 아기예수의 성녀 데레사 성당 (+미사 시간) 양양성당의 역사와 순교자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 그리고 양양성당 성지순례 후기 1887년 원산, 1889년 안변, 1891년 내평 본당에 진출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 의하여 사목이 이루어지던 양양 지역에 본당이 설립된 것은 1921년 5월로, 최문식 베드로 신부님이 양양군 도천면 상도문리(지금의 설악동 입구)에서 사목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듬해에는 교세 확장을 검토하면서 성당 이전에 대한 계획을 세워서 양양읍 서문리 282번지로 이주하였고 주보를 '지극히 거룩한 예수성심'으로 하였습니다. 2대 주임이셨던 유재옥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서문리가 양양읍에서 변두리 지역이고, 그 당시에는 지대가 낮아서 홍수 등 침수 피해에 취약한 점을 인지하시고 지금의 성내리 자리로 성당 부지를 마련하셨습니다. 1939년 4월 .. 2025.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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