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남종삼 요한은 1817년 충청북도 충주 출생입니다. 본관은 의령입니다.
본인의 큰아버지이며 조정의 고위 관료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2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가 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영해 현감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천주교 신자가 조정 관리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조선 전통적인 행사에 참여하거나 주관해야 했고, 이는 천주교 신앙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이었지요. 마음고생이 크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미신 행위를 멀리하고 본인의 신앙적 양심에 따라 사셨습니다.
위 사진은 서울 미아동성당에 있는 성 남종삼 요한 성인의 흉상과 이콘 그림입니다. 미아동성당의 주보성인이 남종삼 요한 성인입니다.
이콘에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있네요. 남종삼 요한 성인이 생전에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천주교는 충과 효를 다하는 학문이기에 배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학자의 기품과 신앙인으로서 품격을 겸비한 남종삼 요한 성인
관직에 있을 때에는 청백리로서 인권평등을 주창, 귀천의 차별없이 공정한 판결을 함으로써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벼슬을 내려놓고 1850년대부터 최양업 신부, 베르뇌 주교, 부친 남상교 아우구스티노 등과 "천주가사"를 집필합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는 등 교육 활동에도 집중하였습니다.
본인이 학자로서 학식이 뛰어나셨기에 서학서를 통하여 신앙에 깊이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1863년 철종 때에는 조정의 부름을 받아서 정3품 승지가 되었고, 고종 초에는 왕족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였습니다.
1866년에는 러시아 선박이 함경도에 침입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하여 방아책을 건의하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교섭하여 러시아의 세력을 저지하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 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반드시 뜻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요. 마음이 돌변한 대원군에 의하여 살벌한 병인박해가 발생하였습니다.
남종삼 요한은 외국인 선교사들을 숨겨준 사실이 발각되어, 1866년 3월 1일 체포, 투옥되어 많은 고문을 받았습니다.
사형을 선고받고 1866년 3월 7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형으로 순교 하였습니다.
남종삼 요한 성인의 후손 분들 중에는 신부님, 수녀님도 계시고, 교수님도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회 미술 작품을 많이 만드신 남용우 마리아 작가님이 남종삼 요한 성인의 증손녀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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