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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요한 크리소스토모(요한 금구) 성인 (축일 ; 9월 13일)

by 미남의 전설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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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성당의 주보성인이신 요한 크리소스토모(요한 금구) 성인 석상입니다.
서울 양천성당의 주보성인이신 요한 크리소스토모(요한 금구) 성인 석상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annes Chrysostomus, 요한 금구) 성인 (349 ? ~ 407) (축일 ;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동방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었습니다.

 

349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 안투사의 교육으로 신심이 두터운 신자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 전에 안티오키아에서 철학, 법학, 수사학, 신학을 두루 섭렵하였고, 뛰어난 학자로서 명성을 었었습니다.

369년에 멜레시우스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374년경에 성 바실리오의 지도를 받으면서 은수자가 되어 수덕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386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는 주로 뛰어난 강론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어 크리소스토모, 즉 금구(金口, 황금 입)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신약성경에 관한 연속 강론을 실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계기가 되었고, 주교가 된 이후에는 교회 개혁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성직자와 신자들의 생활 관습에 대한 개혁이었는데, 탁월한 사람이 개혁까지 하게 되니 수구 진영의 기득권 세력들이 요한금구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습니다. 특히 4세기에 일어난 아리우스파의 이단은 독버섯처럼 퍼져 그리스도교회에 해악을 끼쳤습니다.

 

그는 시기와 모함에 의하여 결국 교회 법정에서 단죄를 받고 주교직에서 면직되고 몇 번의 유배를 당하다가 결국 407년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요한은 금구라는 애칭에 걸맞게 수많은 명강론과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의 강론에는 사도 바오로의 서한들이 많이 인용되었습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세는 412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그의 유해는 1626년 5월 1일 이후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1568년 교황 비오 5세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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