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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제천 배론성지 가을은 파란 하늘과 단풍이 아름다웠습니다.

by 미남의 전설 2024.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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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배론성지는 신앙 선조들의 여러 사적과 애환을 같이 간직해 온 거룩한 터전입니다. 가장 일찍 교우촌이 형성된 곳이고, 유명한 황사영 알렉시오의 백서가 탄생한 곳이며, 한국 최초의 격식을 갖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가 자리 잡았던 곳입니다.
또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고, 1866년 병인박해 때 여러 순교자들과 성인들의 순교 역사가 시작된 요람지이기도 합니다.

배론(舟論)이라는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골짜기의 형상이 배 밑바닥 같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본래는 팔송정 도점촌입니다.

2023년 10월 29일 가을 단풍을 만끽하면서 천주교 성지순례를 하기 위한 곳으로 배론성지를 선택했습니다. 성지 담당자 분 말씀으로는 예전에는 용소막성당에서 성지순례를 하고 중앙선 기차(배론성지 방문용 전세열차)로 구학역에 도착해서 배론성지까지 도보로 성지순례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학역은 2021년에 폐역되었습니다. 이제는 자동차나 버스로 와야 합니다. 대전역에서 6시 5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제천역에 8시 2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늦가을에 뜻깊은 역사를 간직한 배론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제천 배론성지 단풍
제천 배론성지 단풍


배론 성지 입구를 지나서 100미터 정도 걸어 오면 "마음을 비우는 연못"이 나옵니다.
여기가 엄청난 사진 핫플레이스입니다. 하하하. 가뜩이나 매우 맑은 날씨에 단풍이 절정이라서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제천 배론본당 성 요셉 성당


성 요셉 성당입니다. 한옥으로 지어진 누각 성당입니다.
제천 배론성지는 본당이기도 합니다. 근처 사시는 교우 분들이 미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크기는 작아요.

제천 배론성지 진복문


진복문(眞福門)입니다.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동상과 현양탑입니다.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동상과 현양탑입니다.

제천 배론성지 황사영 토굴


위 사진은 황사영 토굴입니다.
황사영 알렉시오는 남인 출신으로서, 16세에 진사시 급제로 정조의 총애를 받습니다. 정약현의 딸 정명련(난주) 마리아와 혼인하여 영세를 받았습니다.
황사영 백서(비단 위에 쓰인 글이란 의미)는 총 122행에 13,384자입니다. 서론 본론 결론 형식을 갖춰 당시까지 박해상황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내용을 담아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한 서한입니다.
박해과정을 담은 백서가 발각되어 1801년 12월 서울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능지처참이란 것은 몸을 6등분으로 사형하는 끔찍한 처형입니다.
하지만 백서 내용에 일부 문제점이 있죠. 청나라에 의한 속국화, 서양 군대에 의한 조선 조정 협박을 간청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명백하게 황사영 알렉시오의 세계관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천주교 신앙을 위해서 헌신하신 것은 인정하고 존경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사영 알렉시오는 아직도 성인품이나 복자품에 오르지 못하고 증거자로 남아 있습니다.

성 장주기 요셉 성인 상
성 요셉 신학당
왼쪽은 푸르티에 신부, 오른쪽은 프티니콜라 신부 상입니다.


장주기 요셉 성인 상, 성 요셉 신학당, 푸르티에 신부 교장과 프티니콜라 신부 교수 상 사진입니다.

1855년 조선교구의 장상이었던 메스트로 신부는 박해 아애에서 장주지 요셉의 집 우리 나라 첫 교구 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신학교에서 1856년 교장으로 부임한 푸르티에 신부와 1861년에 교수로 부임한 프티니콜라 신부는 김 사도요한, 권 요한, 유 안드레아, 임 빈겐시오, 박 필립보 등 신학생들에게 라틴어, 수사학, 철학 및 신학 등 서양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신학생들은 몇 명씩 세 개의 마을에 기숙하면서 신학교를 오가며 공부하였습니다.

신학교는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교구장 베르뇌 주교의 전폭적인 지원, 선교사들의 애정, 그리고 신자들의 기도에 힘입어 사제 양성소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했으며, 그 결과 1866년 라틴어 과정 4명, 신학 과정 2명, 삭발례자(削髮禮者) 1명, 소품자(小品者) 1명 등 8명의 신학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 3월 2일 서울에서 남종삼 요한을 체포하러 온 포졸들이 신학교를 급습하여 두 신부를 체포하였습니다. 이분들은 3월 11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장주기 요셉은 충청남고 보령 갈매못에서 3월 30일에 순교하고, 신학교는 문을 닫습니다.
옛 신학교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현재 있는 건물은 2003년 충청북도의 지원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천 배론성지 십자가의 길


야산으로 조금 올라가면 십자가의 길이 나옵니다. 본의 아니게 등산 운동을 하게 되었지만 상쾌한 산림욕을 하면서 올라가니까 힘든 것 하나도 없더군요.

'땀의 순교자', '길 위의 성인'이라는 별명은 가지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지입니다.


'땀의 순교자', '길 위의 성인'이라는 별명은 가지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지입니다.

가경자는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는 의미. 시복 후보자에게 주어지는 존칭, 교황 비오 10세는 "놀라운 정도의 덕행을 실천하거나 순교한 사람이라야 가경자 칭호를 받을 만하다"라고 교령을 공포합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이 땅의 두번째 사제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 어머니는 이성례 마리아 복자입니다.
그는 1836년 12월 김대건, 최방제 등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가서 신학 교육을 받고,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는 귀국 후 11년 6개월 동안 산간 오지에 있는 교우들을 방문하여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사목하는 구역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5도로 6천여 명의 신자들과 127개의 공소가 있었습니다. 1861년 6월 15일 경상도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최양업 신부는 과로로 안타깝게 문경에서 선종하였고, 그 해 11월경 교구장 베르뇌 주교에 의하여 당시 요셉 신학교가 있었던 이 곳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입니다.


위 사진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입니다.

성전 안이 확실히 천장이 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성전 안이 확실히 천장이 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故 지학선 다니엘 주교님은 배론성지를 한국 천주교회의 "믿음의 고향"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영적인 고향에서 순례를 해서 행복했습니다.
배론성지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 대전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천 배론성지 성당 기본정보 (2024년 5월 13일 기준)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구학리 640)
전화 ; 043-651-4527
주임신부 ; 심유섭 사도 요한 신부님
주보성인 ; 성 장주기 요셉

제천 배론성지 성당 미사 시간

배론성지 본당 미사
주일 ; 10:00(교중)
월요일 ; 없음
화요일 ; 19:00
수요일 ; 10:00
목요일 ; 19:00
금요일 ; 10:00
토요일 ; 16:00

배론성지 순례자 미사 ; 화 ~ 주일 오전 11:00 (월요일 없음)

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수도원 미사 ; 평일 화요일 17:00 / 월,수,목,금,토 오전 6:15(하절기 3~11월) / 오전 7:00(동절기 12~2월) 그리고 주일 오전 7:00

배론성지 순례확인 도장입니다.


배론성지 순례확인 도장입니다. 배론성지 안내 부스 또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대성당 입구에서 찍을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에 대하여 제가 작성한 글 링크입니다.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 내용, 성지 167 장소, 성지순례 의미 설명 (sacred-andrea.com)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 내용, 성지 167 장소, 성지순례 의미 설명

언제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저의 본당 청년미사 후 청년들끼리 간단한 다과회가 있었습니다.그 자리에서 어떤 자매님과 대화하면서, 제가 부모님과 함께 전주 한옥마을 여행을 갔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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