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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인, 성녀, 복자, 세례명

(세례명 추천) 손소벽 막달레나 성녀,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성인

by 미남의 전설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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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손소벽 막달레나 성녀(왼쪽)와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성인(오른쪽) 그림입니다.

서울 삼각지성당 안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이고, 심순화 카타리나 님 작품입니다.

 

손소벽 막달레나 성녀 (축일; 9월 20일)

 

서울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손소벽 막달레나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하고 또 어머니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17세 때 최창흡과 혼인하였으며,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지자 남편과 함께 대세를 받고 성체를 모시고부터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6월, 손소벽은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사위 조신철이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의 출처 추궁 때문에 포청에서 주리 세 차례, 태장 260대를 맞는 혹형을 당했으며, 형조에서도 세 차례 형문(刑問)을 당하였습니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성인 (축일: 9월 20일)

 

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박종원 아우구스티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매우 궁핍하게 살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범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가 입국한 뒤 회장직을 맡아 보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해 있던 그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교우들과 연락하여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는 피신한 지 8개월 만인 10월 26일에 체포되었고, 이튿날 그의 아내 고순이도 체포되어 같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박종원 아우구스티노는 포청에서 아내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고 또 아내와 함께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냈습니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4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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