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80

제주교구 황사평 천주교 성지순례 제주도 신축교안 사건의 원인, 과정, 결과 그리고 황사평 성지의 역사 제주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처음 알려진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무렵으로 추정됩니다.당시 박해로 정난주 마리아가 제주로 유배를 왔기 때문입니다.이후 1845년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타고 있던 라파엘호가 제주에 표착하여 용수 앞바다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1857년에는 제주의 첫 신자인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899년 파리외방전교회 페네 신부와 조선교구 김원영 신부가 파견되어 제주에 첫 본당(현재의 제주 주교좌 중앙성당)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천주교 교세는 점점 확대되어 갔습니다. 선교사들이 토속신앙으로 행해지고 있던 미신행위를 근절시키고, 여러가지 도덕적 생활을 요구하는 천주교 교.. 2025. 3. 4.
칠곡 가실성당 한여름은 배롱나무 꽃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배롱나무 꽃이 한참 아름답게 핀 한여름에 가실성당에 성지 순례 다녀왔습니다.왜관역에서 내려서 낙동강을 따라 낙산리로 쭉 내려오면,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짙게 느껴지는 붉은 벽돌이 예스러운 가실성당이 나옵니다.가실성당 사무실에 며칠전에 전화로 문의드리고 배롱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는 계절에 맞춰서 2023년 8월 3일에 가실성당에 다녀왔습니다.배롱나무 꽃이 예쁜 가실성당의 역사, 특징 가실성당에 다녀온 그날 정말 더웠습니다. 다시는 한여름에 가실성당에 가기 힘들겠지만 그만큼 제 기억에 깊이 남을 2023년 8월 3일이 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배롱나무 꽃이 뭐길래. 하하하.가실성당은 1895년 대한민국에서 11번째, 대구 & 경북에서는 계산성당에 이어서 두번째로 설립된 유서깊은 성당입니다. 초대 주임신부는 .. 2024. 12. 21.
답동 주교좌성당은 아름다운 겉모습과 성전 안 예쁜 유리화를 가진 성당입니다. (+미사 시간 안내) 인천 답동 주교좌성당의 역사와 특징 인천 답동 주교좌성당이 있는 답동(畓洞)은 옛날에는 '논골'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한자 표기로 답동으로 바뀌어집니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드디어 신앙의 자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얻게 되자 그 당시 블랑 주교는 개항지인 제물포가 선교의 주요 거점이 되리라는 예상을 하고 본당 건립을 준비하게 됩니다. 1889년 파리외방전교회 출신 빌렘 신부는 제물포본당(지금의 답동 주교좌본당입니다. 현재 제물포성당은 따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습니다.)에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임시 성당에서 사목합니다. 신자가 늘어나자 약현성당, 명동대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E. Coste, 1842~1896)에게 답동성당을 설계하여 1897년에 준고딕 양식.. 2024. 12. 10.
남방제 천주교 성지 순례 (+미사 시간 안내) 남방제 천주교 성지의 의미와 역사 조화서 베드로 성인은 그의 아버지 조 안드레아(1839. 기해박해)가 순교한 후에 ‘수원 도마지(지금의 평택)’에서 남방제로 이주하여 살았고 한 막달레나와 결혼하여 조윤호 요셉 성인(1848)을 낳아 성가정을 이루었습니다.조화서 베드로 성인은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마부와 복사로 선교 활동을 돕고 전국의 신자촌으로 모시고 다녔습니다.‘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의하면 1850년 초부터 6개월 동안 5개 도(道)와 5천여 리(里)를 걸으며, 수많은 신자를 방문하였습니다. 순방 중에 포졸들의 습격과 외교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수없이 쫓겨나고 붙잡혀서 갖은 고생을 다하였습니다.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경신박해(1860) 때, 갇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와 경상.. 2024. 9. 17.
반응형